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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걷는 것

주금은

소고기카레. 2024. 9. 20. 05:09


죽음은 나를 기다려주지않는다는 생각을 했다. 삶이라 포장했지만.  지난 주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과거의 내가 죽음을 얼마나 건방지게 대하고 쉽게 생각했었는지 다시금 깨닫게되었다. (예상치 못한 어떤 대화들은 내가 혼자선 절대 도달하지못했던 명쾌한 결론에 닿을 수 있더라.) 왜 혼자 언제든, 어느때든, 원한다면 스스로 죽을 수 있다 자신했던건지ㅠ 이것 또한 너무너무나 세상 ㅈ도모르고 그저 교만만 할 뿐..이었던 거지. 그러다 오늘 대충 본능대로 살다가고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. 근데 이제 그런 생각이 들면 바로 섬뜩해진다. 타고난 나의 기질대로, 그냥 몸이 편한대로 살다가는 내가 정말 편안해져야 할 때에 가장 몸도 마음도 불편하게 살아야만 할 것 같아서. 누구에게나 삶은 순간에 잠시웃고 매순간 버텨내는 것이라하지만 진짜 계—속 버텨내야만 할 것 같아서. 내가 사랑하고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고 존경과 영감이 되는 사람들을 어느순간 마주 볼 면목이 없을 것만 같아서.

오늘은 회사에서 다른 파트 차장님과 식사를 하다가 “oo이는 지켜보면 빛이 나. 그 빛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건데. oo이 부모님이 얼마나 사랑으로 바르게 키우셨는지 어렴풋이 느껴진다.”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들으면서 떠오른 두가지 생각-1.아직도 이런 말을 들을때마다 마음에 뭉근하게 느껴지는 반항심이 있다는게 가소로왔고 / 2.차마 지금의 내 시야와 좁은 마음으로는 헤아리지못할 내 부모의 그런 사랑이 몇몇 어른들 눈에 보인다면, 나도 나이가 들어감에 점점 더 깨닫게되겠다. 그럼 지금보다는 엄마아빠를 사랑하고 존경비슷한 건 할 수 있겠다. 하는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. 실제로 치기어리고 자기연민에 절여있던 20대를 지나오니 부모님을 사람대사람의 시선으로 전보단 더 객관적으로 마주할 수 있게되면서 가족을 생각할때의 파동이 조금 더 잔잔해졌다. 원망스러운때야 아직도 가끔 불쑥불쑥 생각하지만 늙어감에 따라 고집은 내려놓고 어쨋든 스스로는 가장 평온하고자하는 엄마아빠의 모습이 나에게 가끔 포기가 되고 아주 가끔은 위로가 되고 더 가끔은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.
난 어떻게 나이들어갈까? 앞으로도 싫은 소리는 반성과 변화의 계기들로, 듣기 좋은 말들은 성찰과 뉘우침으로 여기려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. 태생이 교만한 난, 이 두개의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그 순간부터 굳어가고 놓치는 삶을 살게될 것만 같다. 그러니 주의해야지. 그 무엇도 나를 기다려주지않음을, 내가 쥐고 손에 꼬옥 가지고가야만 하는 것들임을 항상 염두해야지.

앞날이 너무 까마득하아다. 조금 멀리서 본다면 크게 그 무엇도 아닐 것들이 지금의 나를 복잡하게 만든다. 그 사실이 쉽게 너무나도 지겹고 부질없게 느껴진다. 그래도 지금보다 좀 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때가 온다면 아니 내 끝에가서야 직접돌아본다면 모두모두 자잘하게 반짝했던 순간들이겠지. 라고 합리화 or 감히예상 or 보기좋을대로 해석해본다~ 현재로선.

이제 일하러가야지. 인생너무 긴데 사실 존나 짧은 것 같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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